시민과 함께 미래를 여는 의회, 변화하고 발전하는 혁신 의정

곽문근의원 입니다.

곽문근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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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문근 의원

  • 직위 : 의원
  • 선거구 : 아 선거구 (반곡관설동)
  • 소속정당 :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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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자유발언

5분자유발언 보기 : 제목, 발언자, 회기, 일시로 구분
제 목 해미산성의 지방문화재 지정의 의미
발언자 곽문근 곽문근 의원
회기 제246회
일시 2024-01-26
  곽문근 의원입니다.

  본 의원에게 5분발언의 기회를 주신 이재용 의장님과 동료의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반곡관설동과 판부면 일대에 걸쳐 신라 말에 축조된 해미산성이 강원특별자치도의 지방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갖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지난 4년간 문화재 지정을 위해 애써 주신 많은 분들께 반곡관설동 시의원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동안 해미산성을 방문해 주신 반곡관설동 통장협의회 통장님과 지역 자생단체회원님, 그리고 시장님, 국회의원·시·도의원님, 방송·언론사 기자님 등 많은 분들 덕분에 원주의 역사를 하나 더 세우는 계기가 되었고, 원주시민으로서 사는 보람과 자긍심을 높여 주셨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학술대회 예산을 편성해 문화재 지정에 힘을 보태주신 원창묵 전 시장님과 역사박물관의 전·현직 관장님을 비롯한 직원들, 반곡관설동의 전·현직 동장님, 특히 해미산성 문화재 지정 요청에 서명한 2천여 지역주민들께도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원주는 천년의 역사 속에서 대동맥의 지리적 환경 때문에 한반도 운명과 늘 같이하며 울고 웃을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한 질곡(桎梏)의 발자취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전쟁으로 선조들이 일궈낸 흔적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아쉬움도 컸습니다. 

  이러한 원주 역사의 흐름에 해미산성도 한반도의 전쟁 역사와 맥을 함께한 중요한 사적지입니다. 그나마 산간오지에 위치하여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1998년에 원주시와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하였고, 이때 함께 조사했던 영원산성은 사적지로 지정을 받았으나, 해미산성은 끝내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반곡관설동 지역주민들의 오랜 숙원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이번에 해미산성이 성벽 축조방식이나 샘물터, 옹기, 배치형태 등에 따른 고증(考證)으로 강원도 문화재위원회 심의회의에서 객관적 심사와 평가를 받아 지방문화재로 공식 지정을 받았습니다. 늦게나마 지방문화재로 지정받은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호국산성인 해미산성이 국가사적지로 인정을 받고, 호국탐방로 개설 등을 통해 많은 원주시민과 외지인들이 찾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원주지역 선조들의 애국심과 호국정신을 함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원주는 대표적인 호국·충절의 도시입니다. 최근의 역사로는 민주화운동의 발상지이며, 역사적으로 재조명이 필요한 위인들이 차고 넘치는 원주인 것입니다. 이분들의 사상과 업적으로도 외국인과 외지인들이 찾게 될 곳이 많고, 지역 특화를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사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원충갑(元沖甲) 장군이 있습니다. 1290년대에 원나라 반란군 카디안(哈丹)이 고려에 침입한 사건이 있었고, 이로 인해 고려국 전체가 공포에 떨었을 때 적군을 물리친 기적적인 승전보는 바로 원주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침략은 원나라 황실 권력 다툼에서 시작됐습니다. 권력 다툼에서 패한 카디안이 고려로 쳐들어와 백성의 인육을 먹는 등 온갖 만행을 일삼아 고려인의 분노를 자아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원주까지 몰려왔으나 원충갑 장군이 치악성에서 7명의 보병으로 4백여 카디안 기병을 격퇴하였고, 말 25필을 빼앗는가 하면 불과 1백여 명의 군사로 결사항전 한 것입니다. 

  마침내 카디안 군대는 원나라 구원병에게 패퇴 당해 원주를 포기하고 충청도 방향으로 돌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과(戰果)로 단숨에 6단계를 영전한 원충갑 장군은 이순신 장군과 버금가는 초고속 승진이었습니다. 

  고려시대의 영웅이었지만 조선이 건국된 이후 원나라의 구원병 도움으로 적을 물리쳤다는 이유에 이분의 공적은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업적은 원주시민에게는 큰 자긍심을 갖게 할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해미산성의 지방문화재 지정이 단초가 되어 원주 호국역사의 가치가 더욱 빛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해미산성 문화재 지정요청 건의문에 합심해 주셨던 동료의원님들께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